영-아르헨, 포클랜드 영유권 분쟁 재점화 조짐

중동/아프리카 / 편집국 / 2016-04-04 16:26:58
아르헨티나 "대화‧진실‧정의의 힘으로 포클랜드 돌려받을 것"<br />
영국 여론 "정부, 최근 들어 포클랜드 관리 소홀"

(서울=포커스뉴스)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계속돼왔던 포클랜드(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 분쟁이 다시 표면화되고 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영국에 대해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 반환을 다시 주장했다. 이 날은 1982년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이 시작됐던 날이기도 하다.
그는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많은 기억들이 담긴 이 제도는 아르헨티나의 소유"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대화, 진실 그리고 정의의 힘으로 이 섬을 반환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르헨티나 연안에서 약 400km 떨어진 제도인 포클랜드는 지난 1833년 영국령 식민지로 귀속돼 현재까지도 영국의 실효적 지배를 받고 있지만 아르헨티나는 지속적으로 주권 반환을 주장해 왔다.
◆포클랜드 영유권 분쟁 재점화…유엔 보고서와 영국 해군 철수 등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은 최근 달라진 정황과 함께 재점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가 포클랜드 군도가 아르헨티나 영해 안에 있다는 유엔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는 아르헨티나 영해 경계를 포클랜드 제도와 주변 해역으로 확대한다는 결정이 명시돼 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 영해는 해안으로부터 200마일에서 350마일로 확대됐다. 아르헨티나 외교부는 이번 결정이 포클랜드를 둘러싼 영국과의 분쟁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최근 포클랜드 군도가 1982년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영국 해군의 보호가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 후 영국 해군은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주권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포클랜드에 프리깃함, 구축함 등 함선과 병력을 주둔하고 있었다.

신문은 영국 해군이 인력 위기, 구축함 엔진 문제와 함께 러시아 해군 동태를 감시하기 위한 함선 배치 문제로 포클랜드 보호에 소홀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영국 정치권에서는 "포클랜드 주민들은 영국 시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방부가 즉시 군함을 파견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국방부 측은 "포클랜드는 아직도 영국 전투기, 전함 등을 보유한 육·해·공군이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의 역사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 분쟁은 제도의 발견과 함께 시작됐다.

포클랜드 제도에는 1764년 프랑스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이들이 보상을 받고 스페인에게 권리를 양도하며 스페인령이 됐다. 1816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아르헨티나는 독립과 함께 포클랜드의 영유권도 같이 승계 받았다는 입장이다. 이후 1826년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영국인들은 1766년부터 포클랜드 제도에 정착을 시작했다. 그러다 1833년 포클랜드 연안에서 독일 상인들의 해적 행위가 횡행하자 영국은 안전보장을 명분으로 섬을 군사력으로 점유하고, 포클랜드를 영국령에 포함했다. 영국은 자신들이 먼저 정착한 영토를 되찾았다는 입장이다. 포클랜드 주민 대부분은 영국계이며 현재 영국령 자치정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각자의 입장은 '포클랜드 전쟁'을 통해 무력충돌로 나타난다.

포클랜드 전쟁은 1982년 4월2일 아르헨티나 정부가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영국으로부터의 "영유권 반환"을 요구, 포클랜드를 무력점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는 아르헨티나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즉각적으로 "군사적 응징"을 선언하고 포클랜드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영국군이 포클랜드에 상륙한 후 75일 간의 격전 끝에 6월14일 아르헨티나군이 항복하면서 전쟁은 종결됐다. 이때 충돌로 아르헨티나인 649명, 영국 군인 255명 그리고 포클랜드 섬 주민 3명이 사망했다. 전쟁은 종결됐지만 영유권 문제에서는 깨끗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국의 실효적 지배가 재개돼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남게 됐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았다.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영국에 대해 포클랜드(아르헨티나 명 말비나스) 제도의 영유권 반환을 주장했다. 사진은 포클랜드 전쟁 이후 1982년 9월17일 영국군의 귀환을 기다리는 사람들. ⓒ게티이미지/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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