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아 준 사람들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던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남편 짐과 상의할 것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모처럼 테이블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 오랜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밴쿠버 시내에 사무실을 하나 더 내고 싶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모두가 몸을 움츠리고 있는 이때에 사업을 확장하겠다니 짐이 내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뭐요? 경기가 좋지 않아 지금 너무 힘들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그래요, 그래서 말인데요, 한두 나라에 의존하면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 어느 나라 학생들을 생각하고 있는 거죠?”
짐은 차 한 잔을 더 가져와서 그것을 한 모금 마신 후에 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며 계속 놀라는 표정으로 내 설명을 기다렸다.
“멕시코와 유럽 학생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 나라 출신 사람을직원으로 채용하려고요.”
나는 짐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면서 ‘노’라고만 말하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주인이 그 나라 말을 못하면 많이힘들 텐데요. 최소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는 알아야 되지 않겠어요?”
“그도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막연히 기다리고만있을 수 없어요.
위기일수록 뒤로 물러서지 말고 도전하라고 했어요.”
우리의 대화는 자정을 훨씬 넘어서 끝났고, 그날 밤 짐으로부터내 계획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 내가 위기의 상황 속에서 과감한 도전을 결정한 데는 우리 어머니와 한국인 부잣집과 리치몬드의 부잣집에서 일하던 때의 투지가 큰 뒷받침이 되었다. 황소처럼 일을 하면서 밤에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향하던 그때를 생각했다. 결론은 ‘개척’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위기여서 학생들의 발이묶였다면 다른 시장을 개척하면 된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냥 비내리는 하늘만 쳐다보면서 홍수에 떠내려갈 것을 걱정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 사무실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사무실을 보러 다녔다. 교통편이 좋고 학생들이 찾아오기 쉬운 곳에 사무실을 얻었다. 나는 곧바로 밴쿠버 다운타운 팬더스트리트에 있는 한 빌딩에다가 멕시코학생들을 위한 사무실을 냈다. 작지만 방 4개를 만들어서 시작했다.
그것은 캐나다에서의 최초의 멕시칸 유학원이었다. 남들이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직원은 멕시칸으로 채용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몇몇 나라에서 온 학생만 빼고는 유럽 학생들도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밴쿠버에 살고 있는 멕시코, 유럽 유학생들을 모두 우리 사무실로 불러 모으는 작업에 들어갔다. 멕시칸과 유럽 학생들에게 서서히 ‘김옥란’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멕시칸, 유럽학생들뿐만이 아니라 한국, 일본 학생들도 그곳에 자연스럽게 올 수있도록 실내를 꾸며 놓았다.
직원들과 함께 먼저 프로그램을 그들의 취향에 맞도록 다양하게짰다. 야외 활동과 파티 문화에 익숙해 있는 그들을 위해서 영어와관련지어 이것저것 시도했다.
멕시코와 브라질, 베네수엘라 학생들과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온 유럽 학생들을 위해 차를 동원하여 매주 스키 휴양지인 위슬러로데리고 갔다.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고, 그곳에 갔다 온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무실로 몰려 들었다. 한국, 일본 학생들도 영어 연습을 하려고 오는 학생들도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어느 날, 사무실 복도를 지나는데 바로 곁에 붙어 있던 다른 사무실에서 어떤 아저씨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사 갔나 보죠?”
“네, 오늘 아침에 이사 갔어요.”
“다음 입주자는 정해져 있나요?”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관리인한테 연락해 보세요.” 지금 쓰고 있는 공간보다 작았지만, 우리와 붙어 있는 벽을 허물면 상담실 2개는 더 만들 수가 있겠다는생각으로 관리인에게 연락하여 임대를 했다.
작기는 했지만 사무실 방이 6개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정보만 제공하는 공간으로 그치지 않고 슬럼프에 빠진 학생들이 와서 용기와희망을 얻고 가도록 사무실 분위기도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아예 멕시코 현지에 지사를 오픈하기 위해 현지 지사장 후보자를우리 사무실로 불러 훈련을 시켰다. 나는 이후 멕시코에 2개의 지사를 새로이 개설하고 일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본사에서 근무하던일본인이 직접 그 임무를 맡아 일본으로 나갔다. 재빠른 그의 행동으로 가자마자 일본 지사를 냈다. 아직 미약했지만 그는 열심히 일했고, 조금씩 학생들을 본사로 보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일본 지사는 이곳에 와서 영어 공부를 했던 청년이 맡았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3세여서 우리말이 조금 서툴기는했지만 잘 해냈다. 내가 멕시코와 일본에 4개의 지사를 내는 등 팽창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있을 때, 시내에 있던 유학원 몇몇 군데가IMF 강풍을 못 견디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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