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하늘
그 해 10월의 어느날, 에드먼턴은 이미 겨울을 맞고 있었다. 눈은 펑펑 쏟아지고 기온은 영하 20-30도를 맴돌고 있었다. 친구 희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어 회화가 어느 정도의 단계에 들어서자나는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희정은 그 부탁을 받은 몇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캐나다에 계속 머무르려면 내가 갖고 있는 학생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연장 신청을 해야만 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려면 무엇보다 입학 허가서(Letter of Acceptance) 가 필요했다. 학비가 없어 강의실이 아닌 도서관을 찾아야 했던 나로서는 일자리를 찾아 야간반에라도 등록할 돈을 모으는 것이 화급한 과제였다.
다급한 사정을 알고 있던 친구 희정과, 희연, 달선, 병애 언니등은 나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내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내가 정신없이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을 본 한 필리핀 아가씨는 묘한 제안아닌 제안을 흘리기도 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잠시 동안알고 지낸 그녀는 이렇게 충고했다.
“그렇게 힘들게 살지 말고 쉬운 방법을 찾아봐.”
그것은 다름 아닌 계약 결혼이었다. 캐네디언과 결혼을 하면 영주권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5,000달러만 주면 계약 결혼을 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힘들게사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런 그녀에게 정색을 하며 쏘아붙였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 더 이상 내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용서하지 않을 거야.”
어쨌든 희정의 도움으로 나는 한 한국 식당에 일자리를 마련할수 있었다. 가라오케 시설을 갖추고 있는 ‘서울가든’이라는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1주일에 이틀,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5시부터 영업이 끝나는 심야 시간까지 일을 하기로 했다.
한국 교민들이 적은 곳이어서 그런지 손님의 대다수는 캐네디언과 일본 사람들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첫날 나에게 메뉴판을 주면서 집에 가서 대충 읽어 보라고 했다. 힘들게 잡은 일자리를 놓치지않으려고 나는 집에서 메뉴판을 달달 외웠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혹한의 날씨임에도,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는 생각으로 그 추위를 버텨 낼 수 있었다. 일이 끝나면 주인 아주머니가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룸메이트들이 깨지 않게 하기 위해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가고단한 몸을 눕혔다.
처음 얼마 동안은 손님들의 주문 내용을 잘 몰라 곤욕을 치렀다.
손님이 찾는 것이 아이스크림 이름인지, 칵테일 이름인지, 피자 이름인지를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경우는 손님이 주문한 메뉴가처음 듣는 것이어서 “그런 것 없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분명히 밤새 외운 메뉴판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손님은 자신은 자주오는 단골이라면서 “며칠 전에도 먹은 메뉴가 왜 갑자기 없느냐”고면박을 주어 내 얼굴을 홍당무로 만들었다.
한번은 술 취한 남자가 들어와서 나를 보고 다짜고짜 물었다.
“라이선스 있어” 캐나다에서는 식당에서도 술을 팔려면 면허가 있어야 하는데, 그 남자는 그것을 시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는 그 말을 피자 이름으로 착각하고 그 남자에게 대답했다.
“글쎄, 옆에 있는 피자 가게로 가 보시죠.”
그러자 그 남자는 “너 영어 좀 더 배워야겠구먼.” 하면서 끌끌 혀를 차고 나가 버렸다. 시비를 걸어 뭔가를 얻어 내려고 했다가 말을통 못 알아들으니 답답해서 나가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뱉어 놓고 간 그 한마디가 내 가슴을 오랫동안 무겁게 만들었다.
일을 하느라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내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일하는 곳에서 선불을 받아 한 달 치 월급과통장에 조금 남아 있던 돈을 털어서 대학 야간반에 등록을 했다. 이제부터는 아파트 월세와 생활비는 다른 방도를 찾아 구해야 했다.
추가의 일거리를 찾던 나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에는 달선 언니가 나서 주었다. 내 추가된 일자리는 도너츠 가게였다. 앨버타대학에는 ‘허브몰’이라는 곳이 있다. 1층은 대학 사무실 등이 자리잡고 있고, 2층은 음식점, 커피점, 잡화점 등이 나란히 두줄을 지어길게 서 있었다. 그 위층들은 기숙사였다. 도너츠 가게는 학생들의생활 편의 시설이 있던 2층에 있었다. 그곳의 주인은 한국 사람이었다. 나의 근무 시간은 아침 7시 30분부터 낮 12시 30분까지였다.
이 시간 중에서도 학생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아침 시간과 점심 시간은 정신없이 바빴다. 학생이 주문을 하면, 내가 주문받은 도너츠를 집어 커피 포트 앞에서 일하는 옆자리의 주인 아저씨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그러면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커피를 직접 따라 들고, 그때 주인 아저씨는 돈을 받았다. 나는 아저씨가 학생에게 “탱큐”라고 인사를 하는 순간, 다음 학생이 주문한 도너츠를 집어서 아저씨 앞으로 넘겨주었다.
도너츠라고는 동그랑땡 하나 밖에 모르던 나에게 가장 큰 난관은수십 가지에 이르는 그것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정확하게 구분하는것이었다. 나는 혹 동작이 둔하다고 해고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눈을 부릅뜨고 일을 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내 등 뒤에 진열되어 있는 도너츠들의 이름을 외웠다. 처음에는 손님을 앞에 두고 몇 번이나 다른 도너츠를 건네주면서 진땀을 빼야 했다.
집에 돌아와 도너츠를 빠르고 정확하게 구분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먼저 도너츠 가게 안에서 학생들이 보여 주는 행동들을 일일이 떠올려 보았다.
나는 이내 거의 모든 학생들이 도너츠를 주문하기에 앞서 자기가먹고 싶은 도너츠에 시선이 간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학생들의입 모양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주문하는 학생들의 입 모양을 유심히 살펴본 후 그 모양만으로도 어떤 도너츠를 원하는지 간파할 수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학생들의 시선만 보고도 주문 내용을훤히 알아맞힐 정도가 되었다. 주인 아저씨는 나를 소개시켜 준 달선 언니에게 일 잘하는 아가씨를 소개시켜 주어서 고맙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나는 이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시간 내내 도너츠 가게에서 일을 했고, 그 일이 끝나면 곧장 바로 옆의 도서관으로 가서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그리고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5시부터는 한국식당에서 일했으며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6시부터 밤 9시까지는 야간 영어 회화반에 나가 공부했다.
어떤 날은 한국 식당에서 밤 늦도록 술병과 음식 쟁반을 나르다가 새벽 3시 30분에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이런 날은 2시간 정도만자고 7시 30분에 문을 여는 도너츠 가게에 일하러 나가야 했다. 당시 나는 아침 7시면 대학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에서 늘만나는 한 캐네디언 남자는 퉁퉁 부어 있는 내 얼굴이 걱정스러운듯 “어디 아프냐?”고 물어 오곤 했다
킴오케 오늘의연재 관련 상담문의 조윤수 010-2844-0675
[ⓒ 세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