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중개인이 되고 싶다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2002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인들에게 크게 홍보가 되었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이 더욱강해졌다.
밴쿠버의 한인들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한인회의 이지훈 씨가 앞장을 섰다. 처음에는 한인회 건물에 마련된 대형 TV앞에서 응원전이 펼쳐졌다. 이씨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자동차가 없는학생들을 위해 다운타운에서 한인회 건물까지 학생들을 일일이 실어날랐다. 나는 나대로 우리 사무실에 위성 방송을 달고 다운타운에 있는 학생들에게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의 멋진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의 경기는 밴쿠버 현지 시간으로 밤 11시 30분,아니면 새벽 4시30분에 벌어졌다. 그런데도 경기 때마다 응원단은 급격하게 불어났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16강전 때는 한인회 홀 안에 못 들어가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우리 사무실도 많은 학생들로 꽉찼다.
나는 해마다 멕시칸 파티를 열던 크로에이션 센터가 생각났다.
그곳이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응원전을 펼칠 수 있을 것같았다. 나는 곧바로 한인회의 이지훈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마침그도 늘어나는 사람들을 감당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나를 찾았다고 했다.
밴쿠버의 한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를 한장소로 모을 필요가 있었다. 나와 이지훈 씨는 8강전부터는 크로에이션 센터로 장소를 옮겨서 응원전을 펼치기로 했다. 행사장 임대료와 위성 중계 화면을 받기 위한 설비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료 등 제반 경비는 모두 내가 지불했다.
8강전 날, 나는 붉은 티를 입고 빨간색 머리띠 수백 장을 만들어우리 회사 직원들과 학생들을 데리고 행사장으로 갔다. 내 사무실차량 모두 행사장 인원을 실어 나르도록 총 출동 명령을 내렸다. 다운타운 롭슨스티리트의 퍼블릭마켓에 가니 수백명이 넘는 학생들과이민자들이 행사장으로 가기 위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얼마나 많았던지 응원전은 기존의 한인회 홀과 크로에이션 센터 두군데로 나누어서 펼쳐야 했다.
두 장소는 온통 빨간색 물결이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북소리에 맞추어 “대~한민국!”과 “오! 필승코리아!”를 외쳐 댔다. 캐나다의 한인들은 하나의 호흡으로 하나의외침을 질러 댔다. 그 열기는 북미의 하늘을 뚫을 정도로 기세 등등했다. 이곳의 대표적인 방송사인 CTV에서 이런 광경들을 일일이카메라에 담았다. 경기가 끝난 후 우리는 거리로 쏟아져 나와 “코리아! 코리아!”를 연호하며 어깨동무를 하고 다녔다. 거리의 사람들은이런 우리의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코리아 넘버원!”월드컵을 통해서 우리민족은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인들에게 많은 홍보가 되었고, 한국을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번 기회를통해 더 많이 알려졌다. 캐나다에서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이더욱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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