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10) 실업고등학교로 판정이 나던날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1-28 13:54:20
눈물도 투지도
어머니로부터 받았

그날, 나는 방에 틀어박혀 꼼짝 않고 울기만 했다. 조금 전 큰언니로부터 친구이자 조카인 민숙이 광주의 인문계 고등학교로 입학시험을 치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딸아이를 대학까지 가르쳐 버젓하게 키우고 싶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다.
물론 송순도 계숙도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고 했다. 내눈물은 우리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그룹에 속하는 그들 세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시샘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다가왔음에도 엄마나 큰언니가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미워서 혼자 울고,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그 속내는 얼마나 아릴까 하는 생각에서 또 울었다. 그래서 더욱 엄마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내 슬픔의 뿌리에는 초조감도 자리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시험 공부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고 엄마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내가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눈치로 보아 엄마는 오래 전부터 내 문제로 마음 아파하는 것 같았다. 막내의 장래를 챙겨 주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나서서 고등학교 입학의 행운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일 것이라는 짐작 역시 나를 더욱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남들은 입학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던 나날을 나는 엄마를 쳐다보며 속을 태워야 했다. 엄마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차라리 내가 공부라도 못했으면 엄마 마음을 저렇게 긁어 놓지는 않았을텐데...‘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난장으로 도시락을 갖다 드릴 때도,생선 궤짝을 이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엄마는 도통 말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 앞에서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혼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울었다.
‘아, 나는 고등학교에도 못 가 보는구나. 이제 계숙은 물론 민숙하고도 어울리기가 어렵겠구나.’순간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죽기 살기로 인문계 고등학교로보내 달라고 떼를 쓴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혹 그렇게 했다
가 만성 천식 환자인 엄마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아무 말도 않기로 했다. 엄마가 내 곁을 떠나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애를 태우던 어느 날 밤, 드디어 엄마가 나를 부르더니 무거운 입을 열었다. 엄마의 기침은 이날따라 더욱 심했다.
“옥란아, 콜록콜록, 이 에미가 생각을 쪼께 했는디.....”
나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으로 바싹 긴장했다.
“콜록콜록, 그런디 말이여. 꼭 가야 쓰겄쟈?”
나는 엄마의 말 끝이 “쓰겄냐?”가 아니라 “쓰것쟈?”라는 데서 가슴이 뛰었다. 적어도 고등학교를 보내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때문이었다. 방바닥에다가 이마를 찧을 정도로 마른 기침을 심하게하는 엄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을 이었다.
“근디, 내가 왜 니 맴을 모르겄냐. 근디 말이여. 쿨룩쿨룩..... .”
나는 엄마의 말이 인문계와 실업계의 갈림길에서 결국 내가 원하지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느그 둘째 언니 사는 거기 말이여. 쿨록쿨룩, 그래, 뮈시냐 벌교말이여. 거기 상고가 괜찮다드라. 쿨룩쿨룩, 느그 언니가 알아봤는디 취직도 잘 된다고 하더라. 쿨룩쿨룩..... .”최소한의 끈은 잡았지만 혹시나 했던 나의 기대감은 와르르 무너졌다.
고등학교 진학 자체만으로 기뻐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나는 못내 서운하고 섭섭했다. 그래서 방바닥만 계속 긁고 있었다. 참으려 했지만 자꾸 내 손가락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쿨룩쿨룩. 내 니 맘 다 안다. 근디 말이여, 쿨룩쿨룩, 시상에는말이여, 하고자바도 안되는 게 있는 것이여. 니도 이제 다 컸으니그것을 알아야 한다. 쿨룩쿨룩, 알것냐?”
그치지 않고 터지는 기침 때문에 그렇게 오래 말을 하는 게 처음인 엄마였다. 나는 말을 끝내고 자리에 누워 버린 엄마를 위해 저녁밥상을 차리고 이부자리를 봐 드렸다. 언니 오빠들이 모두 자신의인생을 찾아 집을 떠난 그때, 나는 병든 엄마와 술고래 큰오빠와 올케, 그리고 두 조카와 함께 살고 있었다. 큰오빠는 가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서 팔거나,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생선을 도매로 사서는 소매상에 넘기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오빠 역시 내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런 내가 엄마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엄마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이 막내딸을 위해 내린 것이었다.
‘내가 내 운명을 서러워하더라도 결코 엄마를 원망해서는 안된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고된 현실과 싸우고 있는 엄마의 허름한 모습을 뒤로 하고 방을 나서면서 그렇게 다짐했다.

 

킴오케 오늘의연재  관련 상담문의 조윤수 010-2844-0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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