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28) 3개월 안에 토플 600점 받기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2-15 13:41:24
길없는 곳에 길을 만들다

그날 오후에 짐을 다 풀고 나는 내가 이 네스브리지라는 작은 동네까지 찾아 들어온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남아 있는체류 기간인 3개월 안에 대학의 정식 코스에 들어가 학생 비자를 연장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자면 토플 600점이 필요했다. 정식대학에 들어가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였던 아동심리학을 전공해야한국에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빚이라도 얻을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동시통역을 위한 코스는 따로 받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한 번도 토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3개월이란 기간 안에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나는 그것을 해내야만했다. 정해진 시간에 내가 정한 점수를 얻으려면 하루에 단어 100개를 외워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부엌으로 나가식탁에 앉아 단어를 외웠다. 마치 미친 여자처럼 하루 종일 중얼중얼 외우고 또 외웠다.
룸메이트들이 아침 일찍 직장과 학교에 나가면 나는 저녁때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한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서 영어 단어를 외웠다.
그렇게 동상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나를 룸메이트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화장실에 가는 시간도, 음식을만드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서 밥도 한꺼번에 많이 해 놓고는 그것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었다. 먹는 것이라곤 에드먼턴에서와 마찬가지로 쌀밥에 오이 피클과 계란 후라이,소시지가 전부였다. 이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내 룸메이트 다나가어느 날 이렇게 물었다.
“넌 밥이 질리지도 않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다나에게 나는 이렇게반문했다.
“넌 빵만 먹고 사는 것 같은데, 그럼 넌 빵에 질리니?”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뚜렷한 목표를 코앞에 둔 나는 그런 불같은 투지로 토플 공부에매달렸다. 그러나 이런식의 무모한 투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나는 내 몸을 덮는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도무지 점수가 나올것 같지가 않았다. 설사 남은 두 달 동안 그렇게 열심히한다고 하더라도 토플 600점을 맞기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부터 무모한 계획이었다. 게다가 남은 기간 안에 토플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 뿐이었다.
불안과 초조가 엄습해 왔다. 단어 외우기는 관성이 붙어 하루100개 정도는 쉽게 처리되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만 더 커졌다. 나는 이틀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방에 누워서천장만 빤히 쳐다보았다. 캐나다에서의 내가 서서히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주체할 수 없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빠져 들었다.
50여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난 후, 언제나 그랬듯 내 마음속 깊은곳으로부터 투지의 소리가 들려왔다.
‘김옥란, 이럴 순 없어.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야 해.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나는 벌떡 일어나 수첩을 폈다. ‘최수희’라는 이름에 눈길이 멈추었다. 세상 사람 사는 모습이 모두 유유상종이라고 했다. 부자는 부자끼리,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끼리 친한법이지. 그녀는 나를 3일 동안 일을 시켜 본 후 내가 반찬을 못 만든다고 가정부로 고용하지 않은 밴쿠버 버나비에 사는 한국인 부잣집아주머니였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 분들 중에 혹시 아이 돌보면서 집안일을 할 사람을 찾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용을 거절당했을 때의 민망함이 다시 전해져 왔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저 미스 김인데요. 기억 나세요?”
아주머니는 나를 기억했다. 그리고 내가 용건을 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아주머니는 뜻밖에도 다시 자기 집에 와서 일을 해 달라고 했다. 막상 그렇게 나오니까 곧바로 대답이나오지 않았다. 나는 왜 반찬도 못하는 내가 다시 필요해졌는지에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틀 동안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하루 종일 네스브리지와 토플 600점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버나비 부잣집과 가정부를 선택할 것인지를 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한국인 부잣집 아주머니에게 전화로 통보를 했다.
“가서 일하겠어요.”
그만큼 나는 불확실한 결과에 매달릴 수 없었다. 유학 비자 연장보다는 워킹 비자가 훨씬 뚜렷해 보였다.
“내일 당장 밴쿠버로 떠나야 해.”
저녁에 돌아온 룸메이트들에게 얘기하자 다들 어리둥절해했다.
‘예기치 않던 어느 동양 여자가 갑자기 찾아와서 죽도록 단어만외우더니 갑자기 내일 떠난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입주 때 맡긴 보증금은 나중에 보내 줘.”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부탁하고는 바람의 도시‘ 네스브리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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