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로부터 받았다
신우염으로 그나마 마음을 잡고 일하던 유치원 보모 자리까지 그만 둔 상태에서 500만원을 1년 안에 모은다는 것도 사실 무리였다.
나쁜 짓 말고는 무슨 일이든 다한다는 각오로 이곳저곳 이력서를 내고 쫓아다녔다. 제일 먼저 걸린 일은 커피숍 카운터 자리였다. 강남 압구정동 근처에 위치한 그곳은 둘째 언니가 하는 슈퍼에서 버스로 5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때, 둘째 언니는 서울로 이사 와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고 있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언니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일단 숙식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것 같아 나는 그 일을 하기로했다. 사무실들이 밀집한 번화가에 자리잡은 커피숍은 일요일에 쉬는 것은 물론, 토요일도 오후 6시까지만 문을 열었다. 물론 그 대신 평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영업을 했다. 커피숍은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하루 종일 카운터에 서서 일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발딱 일어서서 인사하는 모습을 주인이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대가로 한 달에 35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나는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은행에다가 저금을 했다. 그럼에도 계산이 잘 서지 않았다. 설사 30만 원씩을 저금한다고 하더라도 1년이면 360만 원에 불과했다. 목표액을 달성하기 위해서는다른 수입이 있어야 했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3학년짜리 조카 희형이가 코팅이 된 큰 브로마이드 한 장을 들고 왔다.
나는 그것에서 새로운 장사 아이템을 떠올렸다. 남대문 시장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코팅된 대형 사진들을 도매로 떼어 와 언니네 슈퍼앞에다 놓고 장당 1,500원 씩에 팔기 시작했다. 이모의 이런 모습이안쓰러웠던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조카도 직접 자기들이 친구들에게 팔아 주겠다며 서너 장씩 갖고 나갔다. 어린 조카들에게 몹쓸일을 시킨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이모사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는 토요일에 커피숍에서 퇴근하는 대로 곧장 사진을 들고는 거리로 나서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팔았다.
드디어 목표했던 1년이라는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커피숍 월급에서 모은 270만 원과 사진 장사로 남긴 160만 원을 합치니 모두430만 원이 되었다. 500만 원에서 70만 원이 모자랐다.
계획한 출국 날짜는 다가오는데, 최소한의 생존 비용으로 생각되는 돈마저 모으지 못하자 나는 초조했다. 이런 내가 안타까웠던지언니와 오빠등 가족들이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50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아 주었다. 이제 480만 원. 20만 원의 차이는 그리 대수롭지않게 생각되었다. 허리띠를 졸라매서 마련한 금쪽 같은 돈 전액을캐나다 달러로 환전을 한 후 캐나다에서 사용할 통장에 입금했다.
그날 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내 힘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무척 뿌듯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한없이 울었다. 캐나다 학생비자 인터뷰 날짜가 가까워 오면서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인터뷰를 잘못하여 학생비자를 받지 못하면 여태껏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캐나다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받는날은 일찍 집을 나섰다. 많이 추워진 서울의 날씨였지만 내 몸은 긴장으로 더욱 더 떨고 있었다. 심문대에 서 있는 사람처럼 내심 공포에덜덜 떨어야 했다.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인터뷰할 시간이 왔고 통역관을 동반한 영사관이 나타났다. ‘올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어차피 건너야 할 강이라면 빨리 건너자. 학생비자를 신청
했던 많은 사람들이 받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은터라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 캐나다에 가서 공부를 하려고 하느냐?”
“캐나다에서는 얼마동안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
“한국에 다시 돌아와선 무엇을 할 것이냐?”
“제가 알기로는 캐나다는 미국을 비롯한 그 어느 나라보다 안전하고, 학비가 저렴하고 또한 돌아와서는 동시통역관이 되겠다”고말했다. 영사관은 무엇인가 통역관하고 얘길 나누는듯 하더니 “좋습니다” 라고 말했다. 캐나다 대사관을 나오는데 함박눈이 내리고있었다. 신바람이 났다. 누구라도 붙잡고 ‘나, 캐나다 간다’라고 큰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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