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란 저자
육지의 최남단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가난한 집안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실업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을 거쳐 유치원교사가 되었으나 신우염을 겪던 중 더 큰 희망을 안고'해외로 나가기'를 결심하며 1년 동안 허름한 일들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30세의 황당한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1991년 3월 29일 캐나다 도착 유학생신분에서 캐나다 시민권자가 되기까지 간호보조원, 가정부, 청소원, 도너츠 가게 점원등 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캐나다 주류 사회가 주목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각종 대형행사 주최,밴쿠버 멀티 컬츄럴 최대 문화행사 주최 (31개국 참가),매년 멕시칸 독립기념일 행사 주최,
캐나다 밴쿠버 최대 교육박람회 주최,
아프리칸 비영리단체 설립아프리칸각종 행사,
흑인역사의달 개최
필리핀, 아프리카에 헌옷 보내기등 특히 헐벗고 굶주리는 민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YWCA 명예 여성상 Nominee,캐나다 국영 CBC 라디오 생방송 출연, TV, 신문등 각종 매스컴에얼굴을 내밀며 활동을 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신직종 창업자이며 캐나다 밴쿠버에 본사를 둔'김옥란유학원' 21개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할 수 있다''하면 된다', '하자'라는 메시지를 보내며,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매직버튼(Find your Magic Button) 을 찾기 바란다."는그녀의 외침이 들어있다.
이 땅의 어머니와 젊은이들에게 바칩니다.
지난 삶을 책으로 엮어 보라는 제의를 받고, 무척이나 망설였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그런 거침없는 날들을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이문제에 대해서만은 고심을 거듭해야만 했습니다. 책을 낸다는 것은 유학원 하나 더 세우는 작업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점철된 힘들고 거친 날들을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 매고 그들에게 감동을 줄수 있는 그런 뚜렷한 결과물이 지금 내게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저를 주춤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고난의 날들을 물리치고, 간신히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작한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그런 빛나는 ‘훈장’이 아직 저에게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밤잠을 설친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책을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비록 짧고 보잘것 없으며 화려함이 없는 그런생이라 하더라도, 아직 그 결과가 초라하지만 그동안 달려 온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작업은 힘겨운 것이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20여년동안 써 온 일기장들과 씨름을 했습니다. 눈물과 웃음의 발자국들을 쫓으면서 그 안에 지극히 평범한 교훈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희망을 알리는 종’이 되고 싶습니다. 제 부끄러운 이야기를통해 작은 조각의 꿈과 희망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이들이 자신이 안고 있는 갖가지 약점을 대면서 “난, 안 돼!”라고 외치는 것을 숱하게 보아 왔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돈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 등등 그 이유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저는 꿈과 희망은 남녀노소, 동서남북을 조금도 편애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한계가 많은 사람이 가꾸는 꿈이 보다 가치 있는 성취일 것입니다. 희망을 향한 도전은커녕 그나마 자신이 지니고 있는잠재적인 가치마저 깎아내리는, 그래서 자신에게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에드먼턴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때, 내 앞을 걸어가던 어떤 72살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중풍이 들어 한쪽이 불편한 몸이었지만 그 할머니는 불어를배우러 학교에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제 인생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초라했습니다. 한때는 가정과학력, 건강과 능력 앞에서 스스로 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머문 적도 있습니다. 실업고등학교를 나와 방송통신대학을 다녔고, 허름한 일들을 전전하면서도 저는 희망의 문을 결코 닫지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캐나다에 와서 황소처럼 일을 하면서도 나는 그현실을 위해 쓰러지지 않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힘겨워하기는 했지만 현실을 원망하거나 억지로 도망치려 애쓰지는 않았습니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저는 캐나다에서 가정부 생활을 2년 반 동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움찔거려질 정도로 혹독한 노동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짐승처럼 부리는 주인을 원망하기도했습니다. 남의 집 청소를 하면서 “나는 지금 이런 일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러려고 여기에 오지 않았어. 좀더 값진 일을 하고 있어야만 해”라는 생각들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일은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물론 희망의 빛줄기도 따라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찮은 일조차 제대로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일보다 나은 일을 시작할 수 없다는 점을 배워 나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를 가장 빠르고 깨끗하게 하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쥐어짜면 아이디어가 튀어나왔습니다. 아이디어는 실습을 요구했고, 실습은 언제나 최선의 방법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인도 놀라는청소 전문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같은 노력은 시간을 벌게 해주었고 다른 일을 꿈꿀 여유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는 ‘시작을 알리는 종’이 되고 싶습니다. 갖가지 핑계를 대며 스스로 포기해 버린 사람들에게 특히 그렇습니다. 꿈은 먼 미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어서서 손을 뻗으면 곧바로 잡히는 바로 그런거리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이심어져 있는 한 물과 거름을 주기만 하면 언제든 싹이 튼다는 것을알았습니다. 짧지 않은 인생에 있어서 10년이 늦고 20년이 늦은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부귀와 권력이 영원하지 않듯 현실 역시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 캐나다에 온 지 20년 되었습니다. 남들은 성공했다고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해 볼 만큼 아직 그런 부자는 아닙니다. 캐나다 사회를 흔들 만한 강력한 힘도 갖고 있진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 제 마음은 세계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비즈니스의 차원을 넘어선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일들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희망은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인색하지 않다는 것을 저는 체득했습니다.
보잘것 없는 이책을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투지의 원천은 제 어머니입니다. 강인하면서 겸손하며, 언제나 부지런하신 어머니에게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있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길을 건강하게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정화수’의 심정으로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망울 때문일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젊은이들이여, 깨어 일어납시다. 우린아직 젊고 활기찹니다. 급변하는 세계속에 첫걸음을 힘차게 디딥시다. 혹시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을 즐긴다면 지금 당장 일어나 생산적인 일에 도전해 봅시다. 꿈을 크게 갖되, 현실과 부딛히면서 더욱 큰 꿈과 희망을 다집시다. 꿈이 그저 몽환에 지나지 않도록 가만히 두지 마십시오.
훨씬 더 나쁜 여건에서도 어느 날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희망을캐러 캐나다에 온 한국의 한 작은 여자처럼, 그렇게 지금 그 자리에서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남편 짐과,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표합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김옥란 씀
2012년 1월
지은이: 김옥란(Kim Ok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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