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24) 잠잘 곳을 찾아, 미국이 내게 손짓하다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2-11 10:55:07
내게는 너무 쌀쌀했던
캐나다의 하늘

수첩 속에 적힌 전화번호를 일일이 훑어보았다. 누가 이 위기에처한 나를 도와 줄수 있을까? 애절한 심정으로 미국 유타 주에 살고있는 미하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내 시선속으로 들어왔다. 미하는 나보다 4살 아래로 한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생과 같은 후배였다.
망설일 틈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미하야, 나 옥란이야.”
“어머머, 옥란 언니, 지금 어디야?”
미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활달한 목소리로 반갑게 대해 주었다.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미하야, 언제 그곳에 갔니?”
“응, 몇 개월 됐어. 근데 언니는 지금 캐나다에서 뭐 해?”
나는 창피했지만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간단하게나마 말해주었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한 달 동안 나를 재워 주고 먹여 줄 수 있겠어?”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가능해.”그러면서 언제 올 것인지를 물었다.
“내일!”
“뭐,
내일?”
한 달 동안 월세를 낸다고 생각하고 미국 유타로 가는 고속버스왕복표를 샀다. 이민 가방은 트레이시에게 맡겨 두고는 속옷 몇 벌과 기본적인 소지품만 조그마한 가방에 넣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뉴웨스트민스터-시애틀-포틀랜드를 거쳐 유타 주로 들어가는 코스를 택했다. 광역 밴쿠버의 도시 중 하나인 뉴웨스트민스터에서 버스를 타고 미국 국경을 넘어 시애틀로 가서 포틀랜드로 가는 버스를갈아타고, 다시 그곳에서 유타 주로 가는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하는 대장정이었다.
그러나 포틀랜드에서 내리니 유타 주로 가는 버스가 15분 전에떠나고 말았다. 다음 버스는 7시간이 지나야 온다고 했다. 남의 집에 살았기 때문에 도시락도 못 싸 온 나는 돈도 없어 음식도 사 먹을 수 없었다. 한여름 무더위로 갈증이 심하게 났다. 배도 사정없이고파 왔다. 그런데 시애틀에서 타고 온 버스의 옆자리에 앉았던 뚱뚱한 미국 아줌마가 자신도 유타 주에 간다며 말을 걸어 왔다. 나는그 아줌마가 건네주는 샌드위치와 사과를 받아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 이튿날,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 길을 바라보면서 오만 가지 생각에 빠져들었다. 밴쿠버를 떠난 지 하루가 꼬박 넘어서 있었다. 정신과 육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미하는 미국인 친구를 데리고 나를마중 나왔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버스에서 내려 자신에게 다가서는데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버스 출입문을 계속 쳐다보는 미하 앞에 다가가서 어깨를 툭 쳤다.
“미하야!”
그러자 미하는 몹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머 언니, 얼굴이..... 어디 아파?” 미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몰골은 그만큼초췌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미하가 살고 있는 프로보라는 곳으로 갔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공기는 신선했고 주변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를 젖과 꿀이 흐르는 그런 낙원으로 꾸며 놓은것 같았다. 미하는 마침 방학 중이라 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나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을 시켜 주었다. 그렇게 편안하고 즐겁게 2주를 그곳에서 보냈다.
그때 나는 캐나다로 돌아가기 보다는 이곳에서 머물러야겠다고생각했다. 그래서 미하에게 이 같은 내 심정을 말했다.
“미하야, 나 여기서 살고 싶어. 같이 살 룸메이트 좀 구해 줄래?”
미하는 조금은 놀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언니, 캐
나다에는 안 갈 거야?”
“그래, 가고 싶지 않아. 뒤도 돌아보기 싫어.”
프로보는 대학 도시였다. 특히 여름 방학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방 값이 무척 쌌다. 3-4개월 동안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방을 룸메이트와 같이 쓸 경우방학 기간 중에는 미 달러로 60달러, 그 이후엔 100-110 달러정도만 내면 되었다. 계산을 해 보니 밴쿠버로 돌아가서 사는 것보다 돈이 더 적게 들었다. 그리고 미하가 있어 의지도 되었다.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내 이민 가방 2개를 우송받기 위해트레이시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 전화 부스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한 번 더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만 오면 캐나다와 나의 인연은 모두 정리가 되는 셈이어서 망설여졌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전화를 걸지 않고 돌아와 미하에게 양해를 구했다.
“하룻밤만 더 생각하고 내일 아침에 최종 결정을 내릴께.”
그날 나는 하얀 밤을 보냈다. 결론은 ‘그래도 캐나다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아무리 고달프고 희망이 안 보인다고 하더라도 캐나다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에 따르기로 했다.
나는 다음날 오전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을 계속 달렸다. 모두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던 한여름, 나는 미친 듯이 달리고 또달렸다.
‘그래, 캐나다.....내 도전의 장은 캐나다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나는 캐나다에서 내 희망을 가꾸어 나갈 거야. 나는 캐나다로 돌아간다.’
나는 그길로 한 달 동안의 프로보 생활을 정리하고 귀환 버스에몸을 실었다. 고마운 미하는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먹을 것을 잔뜩싸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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