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하늘
꽃샘 추위가 살갗을 파고들던 1991년 3월 29일, 나는 마침내 캐나다 유학을 향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내 키만 한 3단짜리 이민 가방 2개 속에 생존을 위한 모든 것들을 꾸려 넣었다. 내 꿈과 젊음, 정열도 함께 그곳에 채워 넣었다. 30살의 나의 무모한 도전은그렇게 시작되었다.
유학을 결심한지 꼭 1년 6개월 만이었다. 큰언니, 넷째 언니, 큰올케는 공항에까지 따라 나와서는 고생길을 자처하며 떠나는 나를격려해 주었다. 아니,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그들을 내가위로해 주어야 했다.
나보다 24살이나 많은 큰언니는 막내인 내 손에 꼬깃꼬깃 접은 1만원짜리 10장을 쥐어 주었다. 언니들은 내가 못 갈 곳으로 가기라도 하듯 펑펑 울었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고마워. 열심히 배워서 꼭 성공할거야. 기다려줘.’ 비행기 안은답답했다. 좁은 의자, 질식할 것 같은 공기 속의 한 가운데 앉아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고역 중에서도 고역이었다. 10시간 이상 태평양바다 위를 나는 동안 나의 설렘은 어느새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의무서운 불안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인 내가 과연 혼자의 힘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근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억누르고 밴쿠버 공항에 내린 후 다시에드먼턴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짐을 모두 찾아서 들고 이리저리 어디로 가서 타야할지 쩔쩔매면서 간신히 갈아탔다. 기내방송에서는 자기네 비행기를 이용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즐거운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런 얘기가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남의 나라에서 호흡한 첫 공기는 지극히 낯선 것이었다. 앨버타의 겨울 공기는 무척 차가웠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왔다.
곧 닥칠 에드먼턴 공항에서의 상황은 내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되어 있던 희정과 그녀의 친구에릭이 보이지 않았다. 함께 내린 사람들이나 마중 나온 사람들 모두 공항을 떠났는데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2시간이 그렇게 지나자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 이대로 국제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오만 가지 잡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자리에 그냥 앉아 있을 수없었다. 희정이 나를 못 찾고 그냥 돌아갈까 봐 안절부절 못하면서공항안을 서성거렸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이국의 땅에서,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공포 그 자체였다.나는 마음을 다독이며 애타게 그들을 기다렸다. 낯선 곳에 나 혼자 떨어져 있는 심한 불안감과 외로움이 어둠처럼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허허벌판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허수아비가 된 기분이 들어스스로 만든 모든 상황이 전율스러웠다. 희정이 끝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난 어딜가야 하나 자칫 잘못되면 팔려갈 수도 있다던데…몸서리가 났다.
이날 에드먼턴 공항에서의 ‘기다림’과 ‘외로움’은 캐나다에서 내가걸어가야 할 앞날에 대한 숙명적인 삶의 코드였다. 하나님은 일찌감치 그것을 나에게 암시하고자 했는지도 몰랐다.
무려 3시간이 지나서야, 공항 청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나에게와서 ‘지금 공항으로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희정의전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조금 마음이 놓이자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생소한 모습들이었다. 서울의 빌딩 숲 속에서 생활했던 나에게에드먼턴의 광경은 허허벌판처럼 보였다. 그 속에 ‘나’라는 사람이내팽개쳐진 그런 느낌이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나를 희정과 에릭이 찾아온 것은 전갈이오고도 1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나는 원망의 마음을 금세 잊어버리고 너무 반갑게 그들을 맞았다. 차 안에서 처음 마주한 3월 말의 에드먼턴은 동화 속 나라와 같았다. 눈 속에 모든 도시가 파묻힌, 말그대로 캘린더 속 설경이었다.
희정은 국제결혼한 언니가 시댁에 간 며칠 동안 언니네 빈 아파트에 묵자며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지금 잠을 자면 시차를 극복하기 어렵다며 가방만 놓게 하고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병애 언니 집에 가서 밥도 해 먹고 놀다 오자며 손을 끌었다.
나는 병애 언니 집에서 달선 언니라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나보다는 7살이 많은 달선 언니는 아파트에 혼자 기거하면서 석사 과정에 들어가려고 토플 공부를 하고 있었다. 도전을 함께할 동지들을만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에드먼턴에 도착한 첫날 만난 병애 언니와 달선 언니, 그리고 친구 희정과는 이후 무척이나 친하게지냈다. 마음씨 좋은 그들은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억지로라도 불러서 음식을 해주고 약을 먹여 주기도 했다. 우리 4명의 여자는 이후
함께 로키산맥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넓은 들판 위에는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고 산 밑으로 형형색색의 눈부신 무지개가 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보는 로키산맥은 그야말로 내 생에 있어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커다란 바위덩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그
형상들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그런 것 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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