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40) 진심으로 한 할머니를 공경하다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2-28 09:43:54
희망은 기다리는 사람을 외
면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그들과 달랐다. 그랬기 때문에 할머니가 그들의 얘기를 내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의 집에서 할 일이 너무많았다. 나는 집안일을 확실하게 하는 것은 물론, 남은 삶에 용기를가지도록 할머니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일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중하나가 내 영어 선생님이 되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영어 발음도 교정 받고 말 상대가 되어 토론도 하고.....
할머니나 나나 모두 즐거운 생활이 되도록 노력했다.
할머니는 무척이나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찾아오는 손님이라고는 주말에 방문하는 둘째 딸 샤론뿐이었다. 할머니의 일과 가운데 유일한 낙은 오후 5시쯤이면 돌아오는 아들 짐을 유리창에 기대어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보고서 많이도 울었다.
‘나이가 들면 저렇게 외로워지는 것이구나. 빛이 바랜 과거를 애써 기억해 내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저렇게 세월에 떠밀려 흘러가는구나.’나는 월급을 타면 거의 절반은 할머니를 위해 썼다. 밖으로 나갈수는 없지만 밖을 바라볼 수는 있었기 때문에 꽃들을 사다 뒷밭에심고 정원에 있는 과실나무들을 새로 가꾸었다. 또, 복권을 사와서텔레비전을 보며 맞춰 보게도 했다.
그리고 집 안의 우중충하고 어두운 색조들을 모조리 밝고 화사한것으로 바꾸었다.
복권과 얽혀 할머니를 무척 즐겁게 만들어 드린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짐이 나에게 4개의 숫자를 불러주었다. 나는 다음날 복권을 사러 나가 짐이 꿈 속에서 가르쳐 준번호들을 골라서 샀다. 그러나 가르쳐 준 숫자 중에 하나가 생각이나지 않아 3개의 숫자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아무거나 골라 샀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나온 당첨 번호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꿈속에서 짐이 알려준 그 번호 3개가 다 맞았던 것이다. 물론 6자리숫자 모두가 맞지 않아 당첨금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것을 받아든 할머니는 두 사람의 놀라운 신통력에 흥분했다. 이 같은 복권 소동 후 짐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서 세 사람이 모두 크게 웃었다.
“다음 꿈속에서는 6자리 숫자 모두 가르쳐 줄 테니, 잊어버리지말아요.”
나는 어떻게 해서든 할머니의 잠자는 영혼을 일깨워 보려고 했다. 짐이 아침 일찍 일을 나가고 나면 할머니와 난 단 둘이서 오손도손 시간을 보냈다. 뒷뜰에는 철에 따라 여러가지 열매가 익어갔다. 체리,블루베리,자두,사과, 그리고 감자,호박,토마토 또한 철마다 갖가지의 꽃이 피어 외로운 할머니와 날 반겨주었다. 난 뒷뜰에나가 밖으로 못 나가시는 할머니가 좋아하실 향기로운 꽃들을 한 웅큼씩 꺾어서 집안으로 들고 들어와 식탁위에 올려놓곤 했다.

할머니의 추억이 가득 담긴 앨범들을 갖다 놓고 얘기 좀 해 달라며 떼를 쓰기도 했다.
“할머니는 저한테 훌륭한 영어 선생님이시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할아버지를 만나 보러 가실 때 재미있는 새로운일을 많이 갖고 가실 거 아니에요.”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할머니의 기뻐하시는 얼굴을 보면 나도신바람이 났다. 나는 진심으로 정성을 다했다. 이런 나의 노력 덕분인지 매일 땅에 묻힐 날만 기다리며 윤기 없는 삶을 살아가던 할머니의 삶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 오고 있었다.
“킴, 네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나와서 보지 않으련?”
할머니는 나를 ‘킴’이라고 불렀다. 잠시 내 방에 있노라면 할머니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나를 불렀다. 이제 할머니도 누군가를 챙겨줄 일이 생긴 것이다. 동부에 사는 친척들과 통화를 할 때도 내 칭찬을 빠뜨리지 않았다.
난 무척 행복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가슴앓이를 하며 얻은일인가. 나와 할머니는 마치 전생의 부모 자식 사이인 것처럼 잘 맞았다.
나는 할머니를 ‘마미ʼ라고 불렀다. 그것은 형식적인 부름이 결코아니었다.
할머니는 나의 또 다른 엄마가 분명했다. 그만큼 나는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비린내만 나는 한국에 계시는 우리 엄마한테서 느끼지 못한 정을느끼면서 나날을 행복하게 보냈다.
우린 늘 부엌 식탁에 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었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갔다. 가정부와 고용주가 아니라 서로를 꼭 의지하며 살아야 되는그런 사이가 되었다. 나는 잠시도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어 유일한 문제는 할머니의 건강이었다. 세월은 야속하게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할머니의 기억력은 날이 갈수록 희미해져 갔다. 가족사가 담긴 스케치북을 꺼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할머니는 두 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 동부에 있는 큰아들 더그는부인과 두 아들이 있고, 할리팩스에 살고 있는 큰딸은 결혼하지 않고 아들 하나를 입양해서 살고 있으며, 둘째 딸인 샤론은 밴쿠버에,그리고 짐은 써리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가끔씩 동부에 있는 자식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할머니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킴을 친동생으로 생각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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