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42) 우울한 송년 댄스 파티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3-26 09:37:44
희망은 기다리는 사람을 외
면하지 않는다

호기심과 존경심의 경계에서 서로가 엇갈리던 짐과 나와의 어정쩡한 관계는 그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다.
밴쿠버의 연말연시 분위기는 11월부터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먼저 상점들이 캐럴송을 틀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내걸면 바로 주택가로 번져 나갔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형형색색의 장식과 조명으로불야성을 이루었다. 가끔씩 눈이 내리기라도 하면 분위기는 자못 환상적이기까지 했다.
젊은이들은 모두들 성탄절과 송년 파티 계획을 짜느라 분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달 전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마틴이라는 남자가송년 파티 파트너로 함께 가자고 제의를 했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에게 호감을 표시해 온 남자였다.
나는 주변의 친구들 모두 그 파티에 가는 분위기여서 마틴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나도 올해만은 그냥 그렇게 쓸쓸하게 지내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파티 날짜는 다가오는데 내 마음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드디어 12월 31일이 왔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에게 약과 잠자리를봐 드린 뒤 파티에 갈 채비를 했다. 역시 설레기는커녕 마음속에 휑하니 바람만 불었다.
짐은 성탄절과 연말 휴가를 받아 하루 종일 집에 머물고 있었다.
마틴이 데리러 올 시간이 다 되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지하실에서 짐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올라와서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수를 컵에 따랐다. 나는 그의 등 뒤에다가 이렇게 물었다.
“짐,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나요?”
약속이 없을 터였지만 상투적으로 이렇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냥 집에 있을 거에요.”
짐은 뒤돌아보며 대답했다. 나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전 조금 늦을 거예요. 제 걱정하지 마시고 문 잠그고 먼저 자요.제가 열쇠로 열고 들어올게요. 엄마 약은 방에다 챙겨 놓았어요..주무시기 전에 한 번 드리세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속이상했다.
그래서 짐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서 내 방에서 옷을 두벌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저 오늘 무슨 색깔의 옷을 입고 가면 좋을까요? 빨강 아니면 검정, 어느 것이 더 나을까요?”
짐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검정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더 낫겠네요.”
“그래요? 그럼 이걸로 입어야겠네.”
어색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오늘 같은날에는 짐도 데이트가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조금 들떠서 여자라도 만나러 나가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할 것 같았다. 특별한 날에도, 특별한 모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에 속이 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짐은 그저 이집의 막내아들일 뿐 나와는 특별한 사이도 아닌데 내가왜 그런 생각을 하며 또 무슨 상관이라고 내 마음이 이리도 아린 것인지 그저 우리는 얘기가 잘 통하는, 그 정도 사이일 뿐인데.....바깥에서 마틴의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나가야 할 순간이었다.
신발을 갈아 신으려고 하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짐이 내 뒤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그러나 아주 조용하게 말을 꺼냈다.
“오늘.....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안 되나 해서요. 그래 주었으면좋겠어요.”
얼마나 망설이다 겨우 꺼낸 말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짐의 이 같은 요청을 듣자 내 마음이 샐쭉해졌다.
‘그동안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짐, 미안해요. 이렇게 갑자기..함께 파티에 갈 사람이 바깥에 와있는데...
“미안해요. 어떻게 하죠?”
짐은 자신의 요구가 거절당하자 무척 계면쩍어했다.
“그래요. 어서 가 보세요. 재미있게 지내고 오세요.”
곧 이어 마틴이 나타났다.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그는 내게 줄노랑 장미를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마틴이 열어 주는자동차에 오르면서부터 내내 짐이 나를 황급하게 잡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줄도 모르는 마틴은 흥이 나서 떠들고 있었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진작 말을 하지 않았지? 바보 같은 남자..... ’
송년 파티는 교회에서 열리고 있었다. 마틴은 나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키가 작은 나는 그의 발걸음에 맞추려고 거의 뛰다시피 하고 있었다. 마틴은 나를 멋지게 에스코트해주었지만 내 마음은 그의 곁에 머물지 않고 있었다.
마틴의 얼굴을 쳐다보면서도 나는 온통 짐 생각에 빠져 있었다.
혼자 집에 남아있는 그를 생각하니 더욱 안쓰러웠다. 축제일에 짐과함께 있고 싶었는데, 그가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도 야박하게 거절할수밖에 없었던 내 태도를 후회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흥겨운 밴드 연주, 그리고 화사한 의상과 조명등.....
이미 분위기는 달아올라 실내는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거렸다.
그러나 내 마음은 달아오르기는커녕 점점 식어 가고만 있었다.
“잠깐 복도에 나가 있을게.”
마틴에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동안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짐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해서든 정리해야 했다. 짐에 대한 내 감정들을 솔직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 짐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어떻게해야 하나?
같이 있어 달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세상과 통하는 문을 모조리닫아걸고 살아가는 이 남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파티장으로는 들어서지 못하고 마틴이 나올 때까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틴은 실망한 모습으로 복도로 나왔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 외엔 별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로 인해 마틴이 마음 상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지하실 방에서 혼자 있을 짐을 생각하니 그런 것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파티는 저녁 9시에 시작해서 새벽 2시에 끝났다. 자동차가 없는나로서는 중간에 혼자 올 수도 없어서 결국 파티가 끝날 때까지 마틴이 데려다 주기만을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나는 내내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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