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5) 엄마의 운명을 닮은 큰언니 ‘옥이네’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1-23 09:17:16

우리 형제는 모두 7남매였다. 나보다 24살이나 많은 큰언니 밑으로 오빠 둘, 언니 셋, 그리고 나였다. 엄마가 늘 장사를 하러 돌아다
녀야 했으므로 집안일은 자연 언니들의 몫이었다. 그중에서도 맏이인 옥희 언니는 나의 양육까지 책임져야 했다. 하루 먼저 태어난 조카 민숙이와 나를 키웠다.
큰언니는 엄마의 살 냄새를 거의 맡아 보지 못하고 자란 나의 그빈자리를 메워 주었다. 막내 동생인 내가 배고파 칭얼거리다 결국 울음보를 터뜨리면 곁에 있던 6살 위인 셋째 언니도 따라 울었다.
그러면 큰언니는 우리들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큰언니를 ‘옥이네’로 불렀다. 동네 아이들도 ‘옥이네 엄마’라고들 불렀다. 하루는 큰언니가 시장에서 민숙이의 옷을사 왔다. 파란색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진 소매 없는 윗옷에 반바지한 벌이었다. 그 옷을 입은 민숙이는 정말 예뻤다.

이후 나는 그것이 너무 입고 싶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이후 엄마를 조르고 큰언니를 졸라 댔다. 줄곧 언니들이입던 옷만 물려받던 나로는 새것에 대한 유혹을 견뎌 내기가 쉽지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울며불며 보채자 큰언니는 다시 시장에 가서 민숙의 것과 똑같은 옷을 사다 주었다. 바탕색은 달랐지만 나는 날듯이 기뻤다. 그 시큼한 새 옷 냄새. 나는 그것을 입고는 동네를 몇바퀴나 돌았으며, 며칠 동안 그 옷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큰언니는 배움에 대한 욕망이 강한 여자였다. 언제나 손에는 읽을 거리가 들려 있었다. 언니는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맏이여서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희생을숙명처럼 안고 태어난 큰언니는 거기에서 학업을 마쳐야 했다.
큰언니는 비록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당찬 성격에다 꿈과 희망이 큰 여자였다. 그러나 큰언니의 날개를 접도록 만든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큰언니에게 “넌 똑똑하니까 이애비의 중매를 통해 배운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고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말하곤 했다. 큰언니는 신앙과도 같은 아버지의그 뜻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고등사범학교를 나온 인텔리 총각에게 시집을 갔다. 연애의 감정이 전제되
지 않은 결혼, 사랑 없는 결혼은 잔인한 것이었다. 불행으로 점철된결혼 생활이었음에도 큰언니가 쉽게 뛰쳐나오지 못한 데는 아버지의 힘이 적잖이 작용을 했다. 아버지는 “절대로 이혼은 안 된다”며큰언니에게 “여자가 무조건 참고 버텨야 한다”고 일렀다.
큰언니는 결국 이혼했다.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들과 만 3살이된 딸을 데리고 친정인 우리 집을 찾은 큰언니의 그날 그 모습을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다. 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 하며 풀썩 방바닥에 주저앉는 수척한 한 여자의 모습을…큰언니는 그동안 썩은 속으로 인해 심장병이 더욱 깊어져 있었다. 큰언니의 몸은 급격하게 사그라졌었다. 가족 모두가 언니의 건강 회복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큰언니가 주저앉으면 어린 두자식의 인생 역시 끝이기 때문이었다.
둘째언니는 큰언니에게 요가를 권유했다. 당시로서는 드문 요법이었다. 둘째언니는 당시 야간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일본에서공부를 마치고 온 물상 선생님으로부터 요가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터였다. 둘째 언니는 요가가 어쩌면 큰언니의 병을 낫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생님에게 큰언니의 상태를 설명하고는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선생님은 고맙게도 자신이 요가 치료를 해 주겠다고 나서 주었다.
큰언니는 매일 거꾸로 매달려 있거나, 마당 한가운데 깔아 놓은멍석 위에서 무릎을 뒤로 치켜드는 등 이상한 몸짓을 했다. 바로 위언니인 넷째 언니와 나는 그런 큰언니의 모습을 보고 깔깔거리기도하고 직접 흉내를 내 보기도 했다. 언니는 죽기 살기로 그렇게 몸속병마, 그리고 마음속 분노와 맞서 싸웠다. 그렇게 눈물겨운 투병으로몇 년 후 언니는 동네에 구멍가게를 차릴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
큰언니는 두 자식들에게만은 자신과 같은 불운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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