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아 준 사람들
셋째 언니와 형부도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짐과의 결혼식을 5일 남겨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결혼식은, 할리팩스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짐의 누나 린이 봄 방학 때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3월 15일로 잡았다.
결혼식을 앞두고 짐도 나도 각자가 살던 아파트에서 써리에 마련한 신혼 집으로 이삿짐을 옮기느라 분주했다. 나는 웨딩드레스를 비롯해 결혼식에 필요한 것들을 5일전에 준비했다. 결혼식 전날 밤도나는 8시까지 일을 했다. 언니와 형부가 전화를 걸어 채근을 해서야하던 일을 중단하고 사무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결혼식은 학생들과 캐네디언 친구 몇 명, 그리고 가족들이 모인가운데 써리의 교회에서 소박하게 치러졌다. 학생들은 시내에서 스카이트레인과 버스를 갈아타고 식장으로 왔다. 이상하게도 결혼식내내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마치 1시간짜리 비지니스 미팅을 하는것 같았다.
3월 중순인데도 하얀 눈이 내렸다. 결혼식 날 눈이 내리면 부자로 산다는데.....기분이 좋은 서설이었다. 식이 끝나고 밴쿠버의 한 호텔로 갔다.그동안 쌓인 피곤이 닥쳐왔다.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인 일요일은 모처럼 늦잠이란 걸 잤고, 오후가 되자 언니와 형부가 머물고 있는 내 아파트로 갔다. 그곳에서 언니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저녁을 먹는 것으로 신혼 여행을 끝냈다.
다시 일에 매달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에서 보냈다. 언니와형부는 이런 나를 보다 못해 자기들끼리 알아서 시내를 구경하러 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3월이 그렇게가고 있었다. 내일쯤 이삿짐을 써리의 신혼집으로 다 옮겨야겠다고생각하면서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가전화를 할까.
순간적으로 한국에서 걸려 왔을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오빠였다. 오빠의 목소리를 확인한 순간, 내 가슴이 철렁내려앉았다. ‘혹 엄마한테 무슨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막내야, 큰누나가..... .”
오빠는 말을 잇지 못했다.
“큰언니가 어떻게 되었어?” 내가 숨을 멈추며 다급하게 물었다.
“.....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
“뭐?”
심장병으로 한마디 말도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숨이 막혔다. 고생만 하다가 간 큰언니가 너무 불쌍했다. 어려운 가운데도 자기 꿈을 가꿔 가던 큰언니를 통해서 나는 내 인생의 좌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큰언니는 나이가 들어서도 대학을 가고 싶어했다. 그런 언니한테 나는 마음속으로 약속을 했었다. 짐과 신혼집을 구하면서도 언니가 묵을 공간을 생각해 방 3개짜리 집을 찾았었는데. 그런 언니의 허망한 죽음 앞에 나는 한동안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큰언니의 딸이자 나의 죽마고우인 민숙에게 곧바로 연락을 했
다. 그녀와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서럽게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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