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하늘
에드먼턴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새학기 시작도 1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내 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어에만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앨버타대학 내의 도서관은 허브몰이라는 기숙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밤 12시까지 문을 열었다. 도서관안은 몇몇의 중국인 학생들을 제외하면 모두 캐네디언이었다. 누구하나 소리내는 사람도 없이 각자의 공부에 몰두해 있었다. 저토록공부에 빠져 있으니 무엇인가를 해 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난그 중간 어느 한 자리를 잡고 앉아 영어 단어와 싸워야 했다. 영어를 익히는 일은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난한 나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영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영어가 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루기는커녕 아르바이트조차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나눠준 복사물이 다 해질 정도로 그것들을 외우고 또 외웠다.
봄 학기 때 우리 반은 체코슬로바키아, 수단, 헝가리, 중국, 일본, 터키, 레바논, 리비아 출신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나는 반에서유일한 한국인이었다.
내 영어 실습의 또 다른 장은 교회였다. 사실 신앙 생활은 유학생활뿐 아니라 내 인생의 근간을 지탱시켜 준 정신적 기둥이었다.
나는 에드먼턴에 도착하자마자 가까운 교회에 나갔다. 마음이 외롭고 울적할 때면 교회에 나가 혼자 기도했다.
고향에 계신 늙은 엄마와 오빠, 언니들을 생각하며 울면서 기도했다.
눈물로 뒤범벅이 된 기도를 마치고 나면 나는 어느새 마음의 평안과 함께 강한 도전 의식으로 재무장되어 있었다.
교인들은 말이 서툰 나를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처음에는 이들의 말을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은 웃고 있는데 나만 어색한 미소로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그들을 쳐다볼때의 기분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교우 중에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제이콥이라는 남자는 동양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서 이상하리만큼 내 곁에서 맴돌았다. 심지어는 나의 가방까지도 들어주며 내가가는 곳마다 따라 다녔다. 난 그런 그의 행동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챙피하기까지 했다.
한국 학생이 드물던 그때, 앨버타대학에서 종배라는 한국 청년을만났다. 나는 기초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상급반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보기 힘든 동포를 만난 우리는 금세 친해졌지만 만날때마다 한국말을 주고받는 것은 어쩐지 찜찜했다. 그래서 그와 나는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 한국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1달러씩의 벌금을 내기로 약속했다. 거리에 쌓인 눈이 낮에는 녹다가밤이 되면 다시 얼어붙던 겨울의 어느날, 경사진 곳을 걷다가 그만
종배는 빙판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는 휘청거리며 이렇게 말을 했다.
“어이쿠 아파.”
나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후로도 우린 많은 크고 작은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날 내 은행 통장에내가 쓰지도 않는 돈이 수수료 명목으로 빠져나간 기록이 있었다.
아직 영어회화에 자신감이 없던 난 그를 데리고 가서 통역을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 또한 진땀을 흘리면서 손짓발짓하며 끝까지 설명을하여 해결을 한적도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유학생들은 그런 각오로 영어를 공부했다.
이 같은 노력 탓이었을까. 한 학기를 마치고 성적표를 받았는데나는 우리반에서 최고 점수인 95점을 받았다.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우리 반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어. 다음 학기에는 토플을 가르치니까 원한다면 들어도 좋아.”
우리 반에서 내가 최고 점수를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 반에서 나처럼 자신이 갖고 온 돈으로만 유학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수시로 부쳐 오는 돈으로 놀러 다니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렇게 유학 생활을 즐기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있는 힘을 다해 영어 공부에만 매달릴 수밖에없었고 그 결과로 최고 점수가 나온 것일 뿐이었다.
유학 시절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내 자신과 목표에 대한 의심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지독하리만큼 나를 떠나지 않고 괴롭혔다. 가족을 모두 멀리하고 내땅도 아닌 남의 땅에서 하고 있는 이 고생은 대체 무엇을 하기 위함일까? 영어를 잘하는것? 삶의 체험을 폭넓게 해 보는 것? 외국 대학 졸업장을 따는 것? 과연 이런 것들이 전부일까? 아니면 또 다른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정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후에 나는 나를 괴롭히던 이런 물음에 대한 정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혼자 묻고 혼자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무조건 그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내 고민의 실체는 그 무엇도 제대로 돌파해 낼 자신감이 없어서 나온 것이었다. 영어라는 것이 고민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화두가 아니라 부딪쳐서 깨부수어야 할 차단벽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었다. 내 고민은순식간에 사라졌으며 그저 막연해서 불안하기만 하던 내 인생은 탄
력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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