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아 준 사람들
짐은 내가 내려오는 것을 보자 자동차 트렁크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커다란 사각형 박스였다.
“킴, 메리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스, 짐.”
“이것 받아요. 필요할 것 같아서요.”
“어머, 이게 뭐예요?” 컴퓨터였다.
“사업을 하려면 꼭 필요할 거예요.”
가슴이 떨리고 입이 굳어져서 아무런 말도 못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그토록 비싼 물건을 선물로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선물을 받아 본 일이 거의 없던 나로서는 너무나 대단한 선물이었다. 생일에 어쩌다가 미역국 한 그릇 얻어먹는 것이 전부였는데..그나마 외국에 나와서는 그런 것도 없었는데...감격에 겨운 나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모기만 한 소리를
연발했다.
“탱큐, 탱큐!” 그러고 나서 한국식으로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비싼 걸 뭘 하러 샀어요.”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짐은 이런 나의 등을토닥거려 주며 내 방에다 그것을 설치해 주었다. 짐과 나는 그 길로스티븐슨 해변으로 나갔다.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몇몇 사람들이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나는 짐의 크고 따뜻한 손을 잡고 걸었다. 겨울바람이 불었지만 나에게는 봄날의 따스한 바람으로 느껴졌다.
겨울을 지나 봄 기운이 곳곳에 찾아 들 무렵 내 몸은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나는 기계처럼 5시면 잠에서깨어났다. 내가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을 갖추기까지는 아직도 2개월이 남아 있었다.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주인 아주머니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구슬 60개를 빌려 컵에 담았다. 그것을 매일 아침에 1개씩 다른 빈 컵으로 옮겼다.
나는 그동안 계획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영어 공부에박차를 가했다. 영어는 캐나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극복해야할 필수 기본 과제였다. 나는 생활 영어책 기본부터 되어 있는 5권을 몽땅 외웠다. 의식적으로라도 짐과 매일 통화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 라디오를 따라서 말하고, 그날 외울 단어들을 적어 마루를 닦으면서 외웠다.
그러다가도 너무 힘들면 짐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런 문둥이 같은 나라, 다시는 살고 싶지 않으니 내일 밤에 나한테서 전화가 안 오면 한국으로 되돌아간 줄 알아.”
나는 그렇게 이를 악물고 얼마 남지 않은 각박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토록 힘들고 혹독한 시간도 흘러가기는 했다. 그리고 고대하던 3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았다. 1996년 3월 29일. 이날은 내가 캐나다에 온 지 꼭 5년이 되는 날이었다. 워킹 비자에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날이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장을 여는 중요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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