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47) 얼마만에 먹어본 한국 음식인가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3-31 08:52:06
황소 어깨에
날개를 달아 준 사람들

스탠은 법이 변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나의 경우는 아이 보는 일이나 청소하는 일을 해야 영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노인을 돌보려면 이곳에서 별도의 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거의 1년이나 지나서였다. 노인을 돌보는 사람을 찾는 의뢰는 없고 청소나아이 돌보는 일만 있으니까 나를 그곳으로 빨리 보내려고 둘러댄 말이었다.
스탠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청소나 아이 돌보는 일이라도 하겠다
니까 리치먼드에 있는 어느 부잣집을 소개해 주었다. 그 집에서 청소할 사람을 찾는데, 가서 인터뷰를 해 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챙겼다. 짐에게는 간단한 이별 인사를 종이에 써 놓았다. 짐을 직접 보고 집을 떠나면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을 더 이상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짐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할머니의병환을 계기로 그와 가까워지긴 했지만 막상 할머니가 떠나자 나는짐과의 관계에 대해 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짐을 마음속에 두었던 것은 영주권도, 시민권도, 생존을 위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짐에게서 떨어져 순전히 나 혼자의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다시 한 번 짚어 보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리치먼드의 인도인 집에서 일하기까지 아직 2주가 남아 있는데도 서둘러 짐의 집에서 나왔다. 택시 안에서 내내짐을 생각했다. 이제 내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짐과의 인연도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의 연락처를 모르니 늘 그랬듯이선택은 오직 나에게 달려 있었다. 무덤덤한 사람, 그저 불어오는 바람에만 잔잔히 흔들릴 뿐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나무 같은사람, 그 사람이 금세 그리워지고 동정심이 들어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나는 2주일 동안 메트로타운 근처에 있는 한국인 하숙집에 들어가 생활했다. 샤론이 준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을 했다. 한국을 다녀올 정신적 여유도 없었지만 이런 모습으로는 한국에 잠시라도 발을 내딛기가 싫었다.
한국인 하숙집에 2주 동안 있으면서 나는 뭔가 내 정신을 쏟을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할머니와 짐에 대한 기억을 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틈만 보이면 엄습해 오는 슬픔을 그래야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슬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몸서리 치게 두려운 것이었다.
나는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운전을 배우기로 했다. 내가 묵고 있던 하숙집엔 한국에서 관광 온 사람들이 몇 명 더 머물고 있었다.
어떤 어머니와 딸이 와 있었고, 대학교수 1명과 고등학생 1명이 있었다. 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아침 식사로 한국 음식을 먹었다.
얼마 만에 먹어 보는 한국 음식인가.신문에서 일본어를 가르쳐 준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일본에서 8년 동안 있었다는 한국인 선생님이었다. 나와 학생 1명이 그의 아파트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첫날 수업이 끝나고 아파트를나오면서 나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다시 뛰어 보자고 마음먹었다.갓 태어난 선생님의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잠시 놓아두었던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을 다잡을 수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렀던 여름의 뒤안길에서 슬픔의 조각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있던 나는 2주 동안 머물던 하숙집에서 다시 짐을 챙겨 나를 가정부로 고용하겠다는 리치먼드의 인도인 부잣집으로 떠났다.
주인아저씨는 목재사업을 하고 있었고, 안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예의가 발랐다. 결코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결벽증에 걸린 사람처럼 모든 것에 완벽을 추구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집 안 청소에 목숨이라도 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점이었다. 특히 주인 아주머니는 먼지를 아주 싫어했다.
일하는 첫날, 그녀는 내게 종이 3장을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내가이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이 빽빽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먼저, 매일해야 할 일, 집안을 날마다 청소하고, 다리미질도 하고, 두 아이들을 챙겨서 아침에 학교 보내고, 3대의 차를 세차해야 하며,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춰 운동하는 곳에 데리고 가야 했다. 그 밑으로 1주일에, 2주일에, 한 달에 한 번씩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었다. 간단명료한 내용들이었지만 집의 규모로 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커다란 집 안은 3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아이들이 만져서자국이 나면 그때그때 신문지로 닦아 내야 했다. 아이들이 친구들을데리고 오는 날에는 그들 뒤를 쫓아다니며 거의 쉴새 없이 창문을닦아야 했다.
당장 새로운 일자리를 물색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않았다. 어차피 지금의 워킹 비자로 가정부 일밖에 할 수 없으니 어디에서 일을 하든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작은 이유도 있었다. 그 집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 때문이었다. 나는 주인 아주머니를 처음 만나 인터뷰를 할 때 이렇게 물었었다.
“쉬는 시간에 저 피아노를 쳐도 되나요?”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지요.”
나는 일이 힘들고 고달플 땐 피아노로 내 마음을 달랠 수 있겠다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일을 해 보니 피아노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그집은 써리 할머니 집에 비해 10배도 넘는 저택이었다. 아들둘과 딸 둘을 둔 여섯 식구가 사는 집이었지만, 나는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엔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만 해야 했다. 아침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뭔가를 계속 쓸고 닦았다.
주인 아주머니네 식구들은 오일을 사용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목욕을 했다. 나는 각자의 방에 붙어 있는 유리로 된 욕실 벽을 화학약품으로 닦았다. 물론 샤워실 문도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닦았다. 배구, 농구, 스케이팅, 하키, 에어로빅 등 운동복도 다양했다.
흰색 타월도 몇 개씩을 쓰고, 심지어 신발까지 계절에 따라, 용도에 따라 다르게 신었기 때문에 빨랫감도 엄청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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