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11) 입시 전날 연탄 가스 소동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1-29 08:47:13
눈물도 투지도
어머니로부터 받았다

벌교 상업 고등학교로의 진학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운명적으로 엄마가 내게 내려 주는 진로 결정을 받아들였다.
오래 전부터 고민을 하고 나름대로 다짐을 한 것이어서 그런지 엄마의 결정이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꿈에도 그리던 인문계 고등학교로 못 간 것은 그런 대로 괜찮은데, 정작 나를 슬프게 만들었던것은 이제 나마저 엄마 곁을 떠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불쌍한 우리엄마는 누가 돌봐 줄까. 녹동에서 벌교까지는 버스로 1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비포장 도로에 차멀미를 심하게 하는 나로서는 애초부터 통학은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벌교에 살고 있는 둘째 언니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언니와 오빠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나갔고, 집에는 이제 큰오빠 가족과 점점 쇠약해져만 가는 엄마만 남게 되었다.
엄마와 떨어져 나 혼자있게 되자 실로 많은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대학 못 가면 어때. 꼭 대학을 나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사실 내가 자라난 마을에서는 초등학교에서 학업을 끝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애써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주체할 수 없는 억울함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것은 마치 불덩이와 같은 분노였고 슬픔이었다. ‘아악!하고 외마디 비명이라도 질러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뒤안으로 가서 땅바닥에 털썩주저앉아 미친 듯이 울어댔다. 땅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꿈속에서도 갈망하던 대학생의 모습은 그렇게 점점 나와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펑펑 울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대로 포
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 주었다. 이제 내 문제는내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나도대학생이 될 수 있다.’
나는 뒤늦게 고등학교 입시 공부에 들어갔다. 산란한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험 치러 가는 날 새벽에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입시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내일 시험에 붙으면 나는 상고에 가게 된다. 민숙, 송순, 계숙은인문계에 가서 곧 여대생이 될 것이고, 결국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길을 걸어가겠지.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취직을 하고.....아닌데...... 이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닌데.....’다음날 아침, 나는 눈을 뜨지 못했다. 얼굴은 황달에 걸린 사람처럼 노랗게 바래 있었다. 연탄 가스에 중독된 것이었다. 나를 발견한
엄마는 부엌으로 달려가 항아리를 열고 김칫국을 한 사발 퍼와 내입을 벌리고 부었다. 그리고 손과 발을 연방 주물러 댔다. 그것이엄마가 할 수 있는 응급 처치의 전부였다.
엄마는 상황이 다급해지자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를 부르면서“옥란 아버지, 이 아이를 데려가면 안 돼요. 제발, 안 돼요”하며 미친 사람처럼 기도했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엄마가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토록 원망하던 아버지를 가슴 깊이의지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 탓이었을까. 머리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나는 동네 아저씨의 부축을 받으며 버스를 타고 벌교상고로 갔다. 동네 아저씨는 나를 들쳐 업고 시험장 교실에다가 앉혀 주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고등학교 입학마저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
학교에서 나는 ‘공부 잘하고 열심히 사는 학생’으로 칭찬이 자자했다.
틈틈이 입시 학원을 다니면서 몰래 인문계 공부도 했다. 벌교에있는 둘째 언니 가게에 나가 형부의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형부는그러는 내가 기특했는지 가끔 고기와 우유를 사 갖고 와 언니에게내밀며 “막내 처제에게 주라”고 했다.
언니네 식구들의 이 같은 보살핌 탓이었는지, 나는 그때 어린 시절 내내 나를 괴롭히던 지긋지긋한 코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코피를 흘린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영양실조가 아니었나 싶다.나는 시험 때만 되면 당시 벌교에서 알아주는 집안의 딸이었던허춘선과 늘 재미있던 친구 황은희와 함께 잠 안 오는 약을 먹어 가며 공부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일명 ‘삼총사’로 통했다. 그러나 남들은 다 가는수학여행도 가지 못하게 생겨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마감 하루 전날 언니가 마련해 준 돈으로 겨우 끼어들 수 있었을 정도로 여전히가난했다.

 

킴오케 오늘의연재  관련 상담문의 조윤수 010-2844-0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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