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33) 벼랑 끝에서 만난 탈출구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2-20 08:28:08
길없는 곳에 길을 만들다

1주일을 아무 생각 없이 김씨네 가족과 지냈다. 김씨의 세 딸들은내가 왜 날마다 자기네 집에 머물고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좋아했다. 나는 착한 가족들에게 감사하면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세탁소를 하시는 김씨는 아침 일찍 부인과 함께 일터로 나갔다.
그러면 집에는 아이들 3명만 남았는데, 나는 이 아이들을 하루 종일 돌보아 주었다. 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이것저것 챙겨서 학교보내고, 혼자 남은 막내를 데리고 얘기도 해 주고, TV도 함께 보고,청소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도 만들어 주고, 피아노도 가르쳐 주고, 숙제도 봐 주었다. 그동안 애들만 남겨 두고세탁소에 나가던 김씨 부부는 내가 있으니 퍽이나 안심이 된다고 기뻐했다.
그러는 사이 3개월 더 연장받은 체류 기간이 어느새 3주 정도만남게 되었다.
더 이상의 연장은 불가능했다. 이 기간 동안 어떻게 워킹 비자를받을 수 있을까.
짜도 짜도 비책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땅바닥에 대기도 하고,벽에다가 기대기도 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역시 문제는 스폰서를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부잣집에서 쫓겨난 지금 입장에서 무슨 수로 스폰서를 찾는단 말인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금싸라기같이 아까운 며칠이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의외의 생각이 떠올랐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않았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김씨네가 내 스폰서가 되어 주면 문제는 간단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두 부부는 모두 생업에 종사하고 있고, 한참 어른의 손이 필요한 세 아이가 하루 종일 부모 없이 생활하고 있는 집. 그런 집에 나같이 한국말과 영어가 가능한 유모 내지 가정부는 어찌 보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하루 종일 김씨 부부가 세탁소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저녁 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얼른 뛰어 내려가김씨 부부를 맞았다.
나는 김씨에게 얘기를 꺼냈다. 내 설명을 귀담아 듣던 김씨는 흔쾌히 내 스폰서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마치 워킹 비자를 받기라도 한 듯 들뜬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부터 일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날은 아이들의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어서 나는 아침에 아이들 3명을 데리고 워킹 비자 신청할 서류를 가지러 갔다. 눈이 부시게 푸른 6월의 밴쿠버, 내리 쬐는 햇살은 눈부셨고, 스치는 바람은 상큼했다. 약 1시간 정도를 걷자 쫄랑쫄랑 내 뒤를 쫓아오던 아이들은 궁금한지 물었다.
“언니, 지금 어디 가?” 나는 막내를 업고 길을 재촉했다. 고용 센터의 사무실에 도착하니 한 여직원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 4명은 그 직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한 사무실이었다. 관공서라기보다는 편한 마음이 드는 아담한 개인 사무실에 가까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왜 내가 워킹 비자를받아야 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내 주변을 둘러싼 세 아이는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웅변이었다. 담당자는 아이들을 번갈아 보면서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느끼는 듯했다.
그러나 결정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인터뷰를한 뒤 판정을 기다려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김씨 부부의 세탁소에들른 후 우린 다시 걸어서 집까지 왔다. 주위에는 산딸기 꽃들이 피어 있었고 잔디는 더욱 푸르러 보였다. 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모두 쓰러져 잤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받아 온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비자를 거절당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정직하게 ‘네’라고 표시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비자가 안 나오면 어
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감춘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서류를 다 작성하고 나서 한국에 있는 둘째 형부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하루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몇몇 구비 서류들을 속히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시간은 무척 더디게 가고 있었다. 하루 이틀..... 시간은 흘렀지만 기다리는 서류는 오지 않았다. 다시 한국에 전화를 했다. 보냈다
는 서류가 왜 이렇게 안 오는 것일까. 비자 만료일이 다 되어 가는데 하루 종일토록 서류가 도착하는 것에 신경이 곤두 세워져 있었다. 그런 내 속은 숯검뎅이 처럼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 속을 그렇게 태우던 서류는 비자 만료를 며칠 남겨 놓고 도착했다. 부랴부랴 그것을 챙겨 들고 고용 센타로 다시 갔다. 담당자는서류를 보더니 파일 번호를 적어 주면서 지시했다.
“시간이 없으니 내일 시애틀로 직접 서류를 가져가서 인터뷰를하세요.”
시애틀 캐나다 대사관에 가서 오전 10시 30분 전까지 서류를 접수시켜야 당일 인터뷰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금요일이던 다음날 새벽, 나는 다시 시애틀로 향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나는 이날 서류를 접수할 수 없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은 원래 금요일에는 서류 접수를 받지 않았다. 다시 밴쿠버로 돌아온 후 월요일에 가든지 아니면 시애틀에서월요일 아침까지 머물러 있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문제는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면 잠을 잘 곳이 있지만 돈과 시간이 들었다. 시애틀 역시도 약간의 돈은 들겠지만 남의 집에서 공짜로 잘 수만 있다면 문제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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